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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전북독립영화제 개막작 리뷰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15-11-06 12:23     조회 : 4104     트랙백 주소

2015전북독립영화제 개막작 리뷰

<우리에게 ‘타인의 고통’이란 무엇인가?>

유순희 (전북독립영화제 프로그래머)

<들어가는 말>

2015전북독립영화제 개막작은 세 편의 단편영화로 채워졌다.

채한영 감독의 <사막 한가운데서>, 강상우 감독의 <클린 미>, 권만기 감독의 <초능력자>이다. 한 편은 올해 지역에서 만든 워크샵 결과물이고 다른 두 편은 올해 국내외 영화제를 통해 화제가 되거나 우수작품으로 인정받은 단편영화들이다.

먼저 채한영 감독의 <사막 한가운데서>는 2015 ‘마스터와 함께하는’ 전북단편영화제작스쿨 선정작으로 전문 영화인을 꿈꾸는 지역의 예비 영화인들이 석 달 가까이 교육과 제작을 병행하는 워크샵을 통해 만들어 낸 작품이다. 이 사업이 시작된 이래 영화제측은 영화적 완성도의 위험성을 무릅쓰고 마스터 스쿨의 결과물을 매년 전북독립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상영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역의 열악한 영화제작환경에서 그래도 영화에 대한 꿈과 열정을 가지고 달려온 지역의 영화인들에게 응원과 용기를 보내고 싶어서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의 영화 생산물을 대내외적인 공간에서 알리고 싶은 욕심도 있는 게 사실이었다. 전북단편영화제작스쿨은 6년째로 접어들었고 매해 만들어진 영화들은 이제 6편이 되었다. 그간 마스터 스쿨을 통해 나온 많은 친구들이 지역에서 영화 일을 계속 하면서 경력을 쌓아가고 있고 자발적인 영화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종종 이들의 작품이 다시 전북독립영화제 경쟁부분에 오를 때면 뿌듯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는데 전북독립영화제는 무엇보다도 지역의 영화인들과 함께 숨 쉬어야 존재가치가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막 한가운데서>

한 남자가 사막 같은 벌판을 걷는다. 그의 등에는 한 눈에 보기에도 묵직해 보이는 배낭이 매어져 있다. 이 남자가 걷는 길에 경비가 등장하고 아이를 잃은 엄마가 등장한다. 아마도 작업공사현장을 통해 서로 알고 있음직한 이들의 관계는 무작정 9시까지는 이 곳을 떠나라는 경비의 고압적인 태도와 어딘지 모르게 넋이 나가 있는 아들을 잃은 엄마의 얼굴, 그리고 그들과 무관하게 자신의 길을 가려는 남자의 모습처럼 어딘지 아귀가 안 맞는 듯 모호하면서도 비현실적이다. 도대체 남자가 가는 길에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도대체 종일엄마는 아이를 어떻게 잃어버렸고 어떻게 동서남북 방향도 채 가늠되지 않는 곳에서 아이를 찾을 것인가?

아이 찾는 걸 도와주라며 덜컥 종일엄마를 떠맡게 된 남자는 그래도 자신만의 길을 간다. 잃어버린 아이의 물건인 듯한 장난감을 발견하고 잠시 고민하긴 하지만 서둘러 자신의 일을 행하러 떠날 뿐이다. 남자가 땅을 파고 배낭에서 무언가를 집어 든다. 야구공...뒤이어 남자는 웃옷을 벗는다. 안에 교복을 덧입은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차츰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교복을 벗던 남자가 고이 접던 교복을 얼굴에 묻은 채 오열한다. 저 교복을 묻으러 이 먼 길을 온 것인가? 왜 남자는 교복을 입고 다녔을까? 아마도 오래도록 그가 몸에 간직하듯 입었던 그 교복은 남자와 밀접한 사람, 아마도 아들 또는 딸이었을까? 생각이 화선지에 먹물 퍼지듯 번지다가 어느 순간 숨을 턱 막히게 한다. 돌아오지 않을 아이, 저 멀리 떠난 아이였을까? 이 영화는 남자가 가는 길을 미스터리하게 보여주면서 과연 그 남자가 왜 이 사막 같은 벌판을 헤매고 다니는지 지켜보게 한다. 그리고 거기에 지금 당장 아이를 잃어 찾아 헤매는 종일엄마를 배치시킨다. 떠나간 아이들, 찾지 못한 아이들이라는 교집합을 사이에 두고 이 두 남녀가 걷는 길은 고행의 길 같기도 하고 어떤 의식의 행위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의 이심전심은 곧바로 등장한 경비에 의해 깨어진다. 경비는 그 둘을 이해하는 척 하고 도와주는 척 하지만 자신의 영역을, 자신의 룰을 지키는 데 급급한 경비일 뿐이다. 제 시간이 됐는데도 떠나야 할 영토에서 나가지 않는다고 남자의 배낭을 땅바닥에 내팽개쳐 버리는 경비는 자신의 이해범위 내에서 그들이 타자이고 처리해야 할 상황일 뿐이다. 폭력은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남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자들이 보이는 원칙 또는 이래라 저래라 하는 식의 간섭은 당하는 사람들에겐 또 하나의 처참한 고통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안 되는 것인가? 어쩌면 조금만 더 혼자, 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고, 어쩌면 스스로 땅을 파고 교복을 묻어야 묻어질 것 같은 마음의 결단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지 않는가? 아직 우리에게 남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해 줄 사람은 없는 것인가? 바람에 나부끼는 교복깃발만이 무심할 뿐이다.

 

<클린 미>

대사도 별로 없고 더디고 더딘 스크린의 시간이 흐른다. 그런데도 앉은 자리에서 연달아 두 번을 본다. 당장 무어라 말이 새어나오진 않지만 감정이 머물다 흐르고 머물다 흐르고를 멈추지 않는다. 주인공 병철은 무엇을 원하는 걸까?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어도 그의 마음을 통해 절박하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하나 있다. <클린 미>.

출소한 주인공 병철은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쓰레기차를 타고 도시를 돌며 사람들의 쓰레기를 치운다. 출소 후 병철이 들어간 법무복지공간에 사람들도 다 똑같다. 그런 일상에 남자의 심정을 알만한 대사나 표정은 없다. 남자는 무심히 그 시간을 견디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수시로 잠을 잔다. 합숙소의 공간, 네온사인이 명멸하는 밤의 도시, 밤의 천변, 서로의 존재를 알아도 아무런 아는 체 없이 나란히 길을 걷는 두 남자 등의 이미지가 분위기를 대신하고 사운드는 그가 겪어내는 심정을 말해준다.

지난날의 오류나 실수는 무엇으로 복구될 수 있는가? 아니, 오류나 실수가 아니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거라면 어떻게 복구할 수 있는 것인가? 단지 쓰레기를 치우는 것 마냥 깨끗이 치워지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밤의 도시는 쓰레기를 쏟아내고 누군가는 그 쓰레기 치우는 걸로 밤을 지새우지만 포크 레인에 매달린 육중한 쓰레기 더미만큼이나 현실은 무겁고 흔들거리는 쓰레기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른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팔뚝의 문신처럼, 교체되거나 누군가 다시 사주어야 하는 중고가전처럼, 클린(Clean)을 원하지만 좀처럼 클린(Clean)이 쉽지 않을 것 같은 병철 자신도 세상에서 소외된 채 내버려져 있어야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화 <클린 미>는 드라마 내러티브보다는 카메라의 강렬한 이미지와 굉음(?)에 가까운 도시의 소리와 합숙소의 공간이 빚어내는 침묵의 소리로 영화의 시공간 분위기를 집중시키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병철과 병철을 둘러싼 세상을 생각하게 한다.

무거운 마음의 추가 이리저리 흔들거리지만 밤의 천변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걷는 두 남자의 길이 무디고 무심한 시간들을 거쳐 아무렇지 않은 듯 만나지는 길이었음 좋겠다.

 

<초능력자>

우리는 어떨 때 초능력을 꿈꾸는가?

현실이 곤궁하고 바라볼 미래가 불투명하거나 마음에 절박한 소원이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단박에 해결해 줄 초능력을 꿈꾼다.

민구는 훔친 자전거를 팔고 고기집에서 서빙을 하고 손님이 먹다 남긴 고기를 몰래 집어와 생활의 양식으로 삼는다. 그에게는 돌봐야 할 어린 동생이 있을 뿐, 고등학생인 그를 돌봐 줄 부모(어른)은 부재하다. 공교롭게도 어제 판 훔친 자전거가 학교 복학생 정호의 자전거란 사실이 전달된다. 정호라는 복학생은 동급생을 죽이고 감옥에 갔다 온 일진이다. 정호는 민구에게 팔아서 번 돈의 10배를 요구한다. 150만원. 민구가 며칠 안에 구하기엔 쉽지 않은 돈이다. 돈을 구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 행해진다. 돈을 구하지 못하면 집까지 쳐들어 와 상주하고 있는 정호랑 같이 지내는 어린 동생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정호는 아무렇지 않게 어린 동생이 키우는 병아리를 죽이고 돈을 구하지 못하면 어린 동생에게도 그 화가 미칠 거라 경고한다. 이제 그와 맞설 자존심이나 타협의 길은 없다.

마지막 장면, 정호가 어린 동생에게 키우는 병아리를 옥상에서 떨어뜨릴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 너희 형이 빚진 150만원이 없어진다고...그리고 그게 바로 네가 원하는 초능력이라고 어린 동생에게 말한다. 어린 동생은 병아리를 손에 쥐고 고민하다 결국 병아리를 옥상 아래로 떨어뜨린다. 그걸 본 정호의 웃음과 잘했다는 의미의 머리 쓰다듬. 150만원이란 빚은 사라지고 어린 동생은 현실의 초능력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지만 이 모든 게 정호에겐 그저 “동안 재밌었다” 라는 한 마디로 정리되는 해프닝일 뿐이다.

세상은 악마가 장난(이라고 말하는)치는 상황에 온갖 엽기적이고도 비인간적인 일이 속출하고 결국은 피해자를 자살로까지 이끈다. 거기에 그 악마의 명시적인 잘못이나 뉘우침은 없다. 왜? 그에겐 모든 게 그저 장난이고 재밌는 해프닝일 뿐이었으니까.

권만기 감독의 <초능력자>는 서사를 속도감 있게 진행시키면서도 정호라는 위험에 노출된 민구와 어린 동생의 상황의 긴장감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단순협박인 듯 한 제안이 실제 위험이 되고 살해의 경고까지 오는 상황을 촘촘히 잘 쌓아 올린다. 서사는 군더더기가 없고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현재를 사는 우리가 나와 다른 남, 나와 고통의 무늬가 다른 남과 살아야 할 때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경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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