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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전북독립영화제 초청작 오멸 감독 <눈꺼풀> 리뷰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15-11-08 13:17     조회 : 1431     트랙백 주소

<불모한 현실을 포착하는 ‘오멸’ 감독만의 방식>

장병원 _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평론가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지만 지금까지 오멸의 영화는 크게 두 갈래로 유형화할 수 있다. 먼저 <어이그 저 귓것>(2009), <뽕똘>(2009), <하늘의 황금마차>(2014)로 이어지는 하나의 계열이 존재한다. 이 영화들은 제주도의 풍속에 기초하여 쓸데없어 보이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일상, 문명의 속도를 배반하고 유유자적하는 삶에 대한 긍정, 섬사람 특유의 낙관적 세계관을 자유로운 서사로 요리한다. 또 다른 한 갈래는 <이어도>(2011)와 <지슬>(2012)로 대변되는 (제주의)쓰라린 역사를 시적 언어를 통한 엄격한 형식미로 묘파한 영화이다. 오멸은 이 두 갈래 길을 왕래하며 작가 세계의 보폭을 넓혀 왔다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신작 <눈꺼풀>은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오멸 감독

<눈꺼풀> 주연 배우 문석범

<눈꺼풀>은 고승 달마가 수행을 하다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졸음이 쏟아져 자신의 눈꺼풀을 칼로 도려냈다는 고사에서 모티프를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열한 수행을 통해 고승이 도달하고자 한 경지에 대한 질문과 함께 그가 마당에 던진 눈꺼풀에서 차나무가 자랐다는, 전설에나 나올법한 사연을 이 이야기는 품고 있다. <눈꺼풀>의 서사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시공을 어림하기 쉽지 않은 익명의 섬, 떡을 만드는 남자는 누군가로부터 온 전화를 좀체 받지 않는다. 해지고 누추한 삶을 사는 사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먼 길을 떠나는’ 낚시꾼, 교사와 학생들을 위해 떡을 만들거나 바다에서 자맥질을 하는 것이다. 그들이 섬에 흘러든 사연은 구체적으로 기술되지 않는다. 그러나 쌀을 빻아 떡을 만들 떡매는 부재하고, 절구는 속절없이 깨어진다. 떡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허락되지 않자 깨어진 절구통은 우물을 통해 심해로 들어가고 바다 속에 가라앉은 영혼들과 만난다. 인적이 드문 섬을 무대로 펼쳐지는 <눈꺼풀>에서 오멸은 상상 공간의 독자성을 활용하면서 딱히 ‘서사’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플롯을 짜나간다. 곳곳에서 플롯이 사라지는 순간이 빈발하기 때문에 스토리의 액면만 가지고서는 창작자의 작의를 짐작하기 힘들다.

<눈꺼풀>은 두 가지 미덕을 가진 영화이다. 하나는 소재 처리의 신선함이요, 다른 하나는 서사 조직과 제시에 있어서 그 자신만의 특장을 내면화한 오멸의 개성적인 스타일이다. 전작 <이어도>와 <지슬>을 통해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후과를 질문했던 오멸이 <눈꺼풀>에서 취한 제재는 ‘세월호 사건’이다. 중반 이후까지 암시적으로만 제시되었던 사건의 진상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이 타고 있던 배’의 침몰을 고지하는 방송에 의해 확정적이 된다. 이 영화에서 오멸이 견지하는 태도 내지는 세월호가 남긴 상흔에 대한 영화적 접근법은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비극적인 사건을 갈무리할 새로운 상상력을 요구한다는 인식에 기초해 있다.

<눈꺼풀>은 고안된 가상의 이야기로서 영화에 작가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덧씌운 작품이다. 명징한 주제 아래 개별화되어 진술되는 사건들, 과도하다싶을 정도로 텍스트를 감싸고 있는 상징체계, 모호한 이야기 종결의 방식 등이 전면적으로 대두된다. 영화를 지배하는 상상력의 상당수는 <지슬>의 그것과 겹쳐 있다. 희생자들에 대한 제의의 형식을 기본 얼개로 삼았다는 점이 이런 추정의 바탕이 된다. 낚시꾼과 교사, 아이들 등 떡집을 찾는 익명의 혼령들, 먼 길을 떠나는 그들을 위해 만드는 떡은 망자의 넋을 기리는 행위이다. 제의와 추모의 모티프는 <지슬>의 제사 형식을 통해서 이미 도입된 바 있지만, <눈꺼풀>에서의 그것은 보다 해체적이다. 굳이 분별하자면 <지슬>의 서사가 엄격한 제사의 형식을 따르고 있는데 반해서 <눈꺼풀>은 과감하고 풍부한 이미지 전략으로 그것을 대체하려 한다.

<눈꺼풀>에서 오멸은 다시 한 번 혼령 혹은 유령의 진술을 통해 작가적 상상력을 발현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눈꺼풀>의 가장 큰 난제는 혼령들의 출몰과 그들을 재현하는 방식이다. 해결되지 않은 이승의 구원(舊怨) 때문에 구천을 떠도는 혼령들은 망망대해에 붉은 색 커리어가 부유하고, 구명보트가 지나가는 영화의 오프닝에서부터 등장한다. 떠나지 못하는 원혼을 달래는 의식. 이러한 의지가 담긴 인물은 떡을 만드는 남자이다. 유령을 만나 그들의 증언을 듣는 이 남자는 작가적 시선의 대리자이다. 그를 매개로 하여 표명되는 것은 탈현실을 통한 현실의 극복의지이다. 오멸은 놓친 시간과 그 흔적들의 축적과 같은 이미지를 통해 현실과 허구, 실재와 상상, 언어와 장르에 대한 강박적인 설명을 넘어 현실과 관계가 있지만 특정 장르의 현실묘사와 다른 층위에 놓여있는 공간과 스타일을 지향한다. 실제로 이 영화의 풍경은 2015년이라는 시간과 당최 어울리지 않는다. 언어화하기 힘든 것을 언어로 기술하기 위해 오멸은 이 영화에서 서술적인 개입을 택한다. 세월호 사건이 생긴지 1년여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원혼들이 떠돌고 있고,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그들의 존재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 오멸은 영화 안에서 몇 가지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가장 먼저 눈앞에 나서는 것이 의도된 상징체계인데, 붉은 색 캐리어와 난파된 보트, 파쇄된 절구통, 뱀, 쥐, 지네, 파리, 달팽이, 염소 등 우회적인 상징의 오브제들이 간단없이 출몰한다. 이러한 <눈꺼풀>의 상징체계 안에는 오늘날 한국 사회를 강압하고 있는 공기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깃들어 있다. 상징체계와 더불어 언급해야 하는 것은 특정 이미지의 반복이다. 버려진 불상, 쌀을 빻아 떡을 만드는 절구통, 폭풍우 치는 바다, 연기처럼 사라지는 사람들, 교신되지 않는 전화 등 이미지의 반복을 통한 연상 작용은 이 기묘한 시간 배합과 어조의 혼재를 풀어나갈 수 있는 또 하나의 열쇠이다. 끝으로 카메라의 시선과 움직임을 이야기할 수 있다. 카메라는 시종 낮은 자리에 위치하면서 활발하게 움직인다. 침착하게 사태를 관찰하는 위치에서 사내의 신발, 벌레들과 쥐, 뱀, 염소 따위의 동물을 오랜 시간 비추면서 축생이나 미물의 이미지로 현재적 정황을 환유한다.

역사의 상흔과 희생제의를 이야기하는 <지슬>이나 <눈꺼풀> 같은 작품에서 표면적인 주제는 선명하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주제와 플롯이 효과적으로 상응하지 못할 때 길을 잃게 되는 사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따라서 <눈꺼풀>에 담긴 창작의 진의,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은 논쟁적일 수 있다. 관점에 따라서는 쓰라린 기억을 이토록 애매한 상징과 은유로 처리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고, 동시대로 배경만 옮겼을 뿐이지 그 신비주의적인 어조는 <지슬>에서 이미 진부해진 진술을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한 추상화가 의미를 띄기 위해서는, 또는 그것이 창작자의 예술적 시각이 되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적확한 맥락화와 더불어 그에 대한 의식의 깊이를 확보해야 한다. 현재진행형의 ‘세월호’ 참극의 정면응시를 피해 우회적으로만 읽었을 때 어떤 결여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슬>이 제재화한 ‘4.3항쟁’과 <눈꺼풀>의 ‘세월호’는 역사적 사건을 서사화하는 구성적인 형상화라는 차원에서 다른 층위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눈꺼풀>의 종결은 주목할 만하다. 별다른 스토리를 진행시키지 않는 이야기의 끝에서 오멸은 추상적 관념이 대입된 인물과 상징, 신화적 모티프, 알레고리를 내장한 이미지로 방점을 찍는다. 이 영화를 통해 재차 확인된 바, 영화작가로서 오멸에게 열려 있는 길은 드라마틱한 요소들이 배제된, 심심하지만 때때로 강렬한 정서와 이미지를 통해 감정적인 클라이맥스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눈꺼풀>은 이러한 작가의 스타일을 견고히 하면서 특이한 방식으로 불모한 현실을 포착하고자 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다소간 어색한 연결이나 상징체계의 과다함이 불편한 인상을 남기지만, 오멸은 현실의 좌표를 벗어난 시공을 선택하여 그런 쉽지 않은 선택과 형상화가 현실 해석의 한 태도가 될 수 있음을 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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